구 게시판

문영공 묘소 개축을 위한 강화 허유전 묘 답사기(5-끝)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8-01-21 10:27 조회1,743회 댓글0건

본문

<가락허시중공 무덤 발굴 조사 보고>(손보기, 장호수 저. 1988. 8. 한국선사문화연구소 간. 19p-37p) 책자 요약

 1. 무덤의 방향 : 동에서 북으로 23도 기운 동동북방향

 2. 둘레석 전면 양쪽에 집모양의 문양을 새긴 문돌(門扉石)이 있음 : 처음 발견된 특징있는 모습 (*필자주-허선생은 이것은 예장석이라 함. 즉 국가에서 장례를 주관한 증거라 함)

 3. 무덤 앞쪽에는 2단으로 단막이돌을 짜서 단을 이룸. 사각형의 방형임

 4. 내부 광은 동서로 길게 파져 있었으며, 내부는 돌들이 주위에 박혀 있었다. 내부 광 속에는 부식토가 가득 차 있었다.

 5. 내부 광의 부식토 속에서 고려 토기 조각, 관못이 나왔고, 바닥에서 중국 엽전이 나옴

   *청자잔 : 여러 조각 형식으로 출토. 입술지름-9.1cm, 바닥지름-5.5cm, 높이-3.4cm. 연한 연두빛, 12세기 전반의 청자 특징

   *고려토기 : 움속 동벽 가까이에서 수십 점의 작은 토기조각이 나옴. 맞추어 보니 토기병 거의 하나. 전형적인 고려 토기병. 기타 회색, 갈색의 토기들임.

   *관못 : 나무에 쓴 쇠못 한 점. 길이-3.1cm, 머리 너비-0.8cm, 원 길이-5cm 이상으로 추정.

   *청동조각 : 여러점 나옴. 청동 허리띠 장식으로 추정.

   *엽전 : 총 수는 19점. 고려의 것은 하나도 없음. 10점은 원형 그대로, 나머지는 조각으로 남음. 종류를 알 수 있는 13점 중 12점은 송대, 1점은 금대에 만든 것임.

       @송나라 엽전 : 송원통보(宋元通寶)-1점, 지도원보(至道元寶) -2점, 함평원보(咸平元寶)-1점, 상부통보(祥府通寶)-1점, 천성원보(天聖元寶)-1점, 희녕원보(熙寧元寶) 1점, 원풍통보(元豊通寶) 3점, 원우통보(元祐通寶) 1점, 소성원보(紹聖元寶) 1점,

       @금나라 엽전 : 정륭통보(正隆通寶) 1점

     대부분의 부장품은 도굴 되었다. 즉 발굴 당시 내부의 광 속이 다 드러나 있었다.

 6. 광(움)의 크기 : 길이-250cm, 너비-105cm, 깊이-67cm, 동서로 긴 네모꼴.

 7. 묘표석이 앞단 바로 앞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음. 그 앞에 혼유석, 우측에 향로석이 있었음.

   묘표석 : 전체길이-68cm, 글씨 쓰기 위해 다듬은 부분 길이-45.5cm. 머리쪽 너비-14.4cm. 두께-11.3cm.

               뿌리쪽으로 가면서 차차 넓어져 뿌리 바로 위쪽 너비-17.1cm, 두께 12.3cm.

                글씨는 한 쪽만 쪼아 새김. 알아 보기 힘듬. 빛의 방향을 한 쪽에서만 받게 하여 사진을 찍으면 글씨를 살필 수 있음.--駕洛許侍中公

 8. 묘역 첫계단 왼쪽 끝에 문인석을 세움. 우측의 것은 실전됨. 쑥돌에 사람의 얼굴만 다듬음. 길이-105cm, 얼굴길이-34cm, 얼굴 너비-27cm, 몸통두께-17cm.

 9. 묘역 계단 :  첫 계단 너비-120cm, 둘째 계단 너비- 170cm. 둘째 계단 오른쪽에 오르내리기 위한 단이 더 만들어져 있음. 무덤에 제를 올리던 곳으로 보임

 10. 널은 땅속에 움을 파고 나무 널을 먼저 모시고 납작한 판자돌로 바깥돌널을 짜 맞추었다. 널의 길이는 2m, 너비는 1m 조금 안되는 크기.

 11. 무덤(둘레석)의 크기 : 남북방향-493cm, 동서방향-489cm, --거의 정사각형

 12. 둘레석의 두께 : 54--69cm 로 다양.

 13. 둘레석 높이 : 약 90cm

 14. 봉분에 쌓아 올린 흙의 높이(최초 남아 있던 남쪽) : 1.2m.   중앙은 그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측. 고려시대의 무덤 규격(16자)에 따르면 전체 높이는 약 490cm로 추측.

 15. 무덤 앞쪽에서 엉치뼈 1점이 나옴. 엉치뼈 오른쪽 윗부분 뒷판으로 깨진 것임. 크기, 전체 모양으로 보아 어른 남성의 것임. 그 외의 유골은 없음.

 

heoyujyeon090-1-1.jpg

  <묘소 위에서 본 전면>

 

heoyujyeon100-1-1.jpg

heoyujyeon102-1-1.jpg

 <묘소 옆의 시묘유지 표석>

heoyujyeon108-1-1.jpg

  < 기념촬영> (좌로부터 : 좌회님, 허관구님, 용주님, 필자(항용))

heoyujyeon109-1-1.jpg

  <기념촬영>

 

발굴 당시 동국대학교 팀들이 수고를 했다고 한다. 유물들은 현재 어디에서 소장하고 있는 지 모른다 한다. 문중에서 담장, 재실, 관리사옥을 지었다. 그리고 허선생님이 살도록 했다. 허선생님은 2년 전 가을, 묘소의 참나무 낙옆을 줍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인천 길병원에서 치료 받았다 한다.

허유전의 배위는 실전했다. 그러나 제사시에는 배위분 것 까지 메와 잔을 2개씩 놓는다 한다. 처음에는 제사 때엔 약 500-600명이 모였다 한다. 80년 전두환대통령시절 실세였던 허문도, 허삼수 등이 그 후손이라 한다.

제물은 자손들이 약 2-3일 전부터 와서 준비한다. 약 400-5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점심은 전엔 도시락으로 대체하였는데 최근엔 사람을 사서 직접 음식을 장만한다고 한다.

묘소 발굴 후 주변 정리, 도로포장, 안내 해설판, 도로 안내판 등은 관청에서 해 준 것이다.

실물 예장석과 표석은 별도의 장소에 비밀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것도 보여 주셨다.

heoyujyeon116-1-1.jpg

  <예장석 실물 사진>

heoyujyeon117-1-1.jpg

   <표석 실물 사진>

모든 것을 살피고 난 뒤 묘소 관련 책자 4권을 복사하기 위해 강화읍내로 와서 복사하는 도중 중식을 하고 다시 허선생님께 가서 책을 돌려 드리니 자신 내외를 강화읍의 강화병원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하신다. 병원가는 날이라 한다. 우리는 쾌히 응락하고 함께 강화병원 앞까지 가서 내려 드리고 여러번의 작별 인사를 나누니 오후 4시가 된다. 이제 서울행이다.

최초 출발 장소인 사당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이다. 빨리 온 셈이다. 오늘 참 유익한 하루였다. 머리속에는 아름답게 태어날 문영공의 묘역이 꿈속처럼 떠올랐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