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그 숨겨진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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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8-01-19 18:31 조회1,800회 댓글0건본문
안동 그 숨겨진 명소!!
2008년 01월 19일 (토) 16:24 데일리안
[데일리안 대구·경북 김종렬 기자]
한국전통문화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안동은 한(韓)브랜드, 한류열풍의 진원지이다. 안동은 미래 한국 정신(情神)문화의 독창적 가치를 그려나가는 세계적 브랜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각인되고 있다. 퇴계 선생의 숨결이 묻어있는 ‘도산서원’, 400여년 전 풍전등화의 조선을 지킨 명재상 류성용 선생의 고장 '하회마을',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에 위치한 ‘가송 농촌전통 테마마을’, “안동에서 한국을 배운다!”는 하회안동탈박물관 등 20여 곳에 이르는 박물관의 고장이기도 하다. 청포도, 광야, 절정!, 이육사 선생의 자취를 볼 수 있는 곳. 안동은 옛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곳이다. 안동시는 지난해 ‘경북방문의 해’를 맞아 체험·체류형으로 변화하는 테마형 관광패턴을 주도하기 위해 안동의 숨겨진 비경과 알려지지않은 명소를 찾는 ‘숨겨진 명소찾기’ 프로그램을 개발 신선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이 명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형을 위한 소망을 담아 지은 원찰(願刹) 용수사
약 900여년전 1164년(고려 의종 18년)에 짓기 시작해 그 이듬해에 완성한 90여 칸 규모의 큰 사찰이다. 용수사는 고려시대 무신집권 당시 무신들에 의해 폐위된 명종을 위해 동생 의종이 형 명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려왕조 창건에 결정적 공헌을 한 안동에서 명당터를 확인해 무신들의 세력이 닿지않는 지방에 지은 헌찰이다. ◆퇴계선생이 태어난 방(퇴계태실)
퇴계의 어머니 박씨 부인이 “공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굼을 꾸고 퇴계를 낳았다”해 대문을 성림문(성현께서 임하시는 문)이라 부르게 됐는데, 지금도 태실과 성림문이 보존돼 있다. 성림문의 편액은 퇴계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친필이다. 퇴계는 이 곳에서 1501년 11월에 7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공민왕의 어머니가 모셔진 곳 ‘왕모산성’
1361년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곳으로 피난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흙과 돌을 섞어 쌓은 360m의 성은 절벽과 낙동강이 작지만 천연요세를 만들고 있고 흘르내린 돌들은 전쟁의 상흔을 남겨 주고 있다. 성안에는 서민의 애환을 함께 한 성황당을 지키고 서있는 나무로 만든 남신상(南神像)과 여신상(女神像)이 우두커니 서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보름 동신제(洞神祭)를 지내고 있다. ◆형제의 정이 서려있는 겸암정사, 옥연정사
하회마을 서편에서 마을을 돌아 굽이치는 낙동강, 하회마을을 내려가 보며 비경을 연출하고 있는 부용대 좌측 소나무 숲속에 남동향을 보고 서 있는 겸암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1539~1601)이 1567년(명종 22년)에 학문 정진과 제사 양성을 목적으로 지은 정사이다. 정사에서 내려다보면 강건너 모래사장과 송림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호는 퇴계 선생이 류운룡의 학문적 재질과 성실한 자질에 감복해 지어준 것으로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다. ◆600년의 비밀을 간진한 발효음식의 진수 ‘하회된장마을’
이곳은 일종의 농원 겸 공장이다. 600년의 비밀을 간직한 안동 반가(班家)된장이 만들어 지고 있다. 100톤 정도의 콩을 저장할 수 있는 황토 저장실, 100kg의 콩을 삶을 수 있는 10기의 대형 가마솥, 메주를 매달아 말리는 대형 유리 건조실 메주를 숙성시켜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드는 대형 항아리가 찾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황토, 가마솥, 항아리와 같은 전통적인 기법과 현대화적 방법을 접목시켜 가장 맛있는 장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으로 짭짜름하면서도 부드러운 발효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정이 있는 ‘가일마을’, 검소하고 신의를 중시하는 ‘소산마을’
가일의 지주들은 소작인(小作人)들이 추수때 곡수(穀數)를 적게 가져와도 후하게 대했으며 과객들에게는 며칠씩 묵어가도록 했고 떠날 땐 반드시 노자까지 주면서 적선을 다했다 한다. 마을안에는 전통건조물 제9호인 시습재(時習祭), 노동서사, 수곡종택, 가곡지 등이 자리한 아름다운 전통마을을 이어가고 있다. 풍산읍에 위치한 소산마을은 본관과 성씨가 같으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두 안동김씨(구 안동김씨, 신 안동김씨)가 400여년을 세거해 오고 있는 동족마을이다. 양소택은 신 안동김씨의 종가, 삼소재(경북 민속자료 제66호)는 구 안동김씨의 종가이다. 소산의 옛이름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선생이 “검소하고 신의를 중하게 여기는 씨족이 사는 마을”이란 뜻에서 소산(素山)으로 불렸다 전한다. 이 마을에는 경북도 유명문화재 제19호인 청원루, 삼구정, 안동김씨종택(養素堂), 삼소재, 묵재고택, 동야고택, 비안공구택(敦素堂) 등 7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안동시는 이곳에 삼구정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자연과 하나된 정자 ‘만휴정’ 그리고 ‘묵계서원’
우리 조상들은 자연속에 집을 짓고 대문 밖의 자연을 정원으로 삼았다. 안동시 길안 무계에 가면 이러한 조상들의 지혜를 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만휴정이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지만 보물이 있다면 그것은 청백(吾家無寶物 寶物唯淸白)”이란 유언을 남긴 조선조 최고의 청백리로 알려진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 연산군의 폭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한 후 만휴정을 짓고 사색과 학문에 힘쓴 곳이다. 이곳은 특히 여름이면 그 멋을 한껏 느낄수 있다. 묵계리 100m 구 고갯길을 올라서면 왼쪽에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과 응계 옥고(1382~1436)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숙종 13년(1687년)에 창건됐다. ◆도깨비가 터를 잡은 ‘낙암정’ 그리고 ‘체화정’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절벽 아래로 낙동강 줄기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비경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1987년 12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정된 낙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으로 1451년(문종 1년) 배환(裵桓)이 건립했고 1881년(고종 18년)과 1955년에 중수됐다. 조선 효종 때 진사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고 그의 형인 옥봉 이민정 선생과 함게 살면서 우애를 다지던 장소로 유명하며 정자 앞에는‘체화지’란 연못이 있다. ‘체화’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 연못에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인 방장, 봉래, 영주가 있다. 현판 ‘담락체’의 글씨는 조선 제일의 화가 단원 김홍도가 썼다고 전한다.
조선 중종때 함재(涵濟) 서해가 거처한 안동 일직면 도로변에 위치한 ‘소호헌’, 화강암과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조탑동 오층전탑(보물 57호). 전탑은 전국에 총 5기가 남아있는데 안동에만 3기가 위치해 당시 이 지역 불교의 융성을 짐작케 한다. 안동의 사계절은 나름의 운치가 있다. 그중 봉정사길 국화밭은 숨을 고를 정도다. 국화밭을 보며 가을이 익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금국농원, 황국농원, 가을신선 등의 국화밭은 풍성한 가을의 정취를 오래도록 남길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국화차는 청와대의 공식 선물. 그 옛날 양반과 평민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던 곳 안동. 훈훈한 인정과 검소와 신의를 중시하는 옛 사람들의 마음이 진한 정기로 전해지고 있다./ 데일리안 대구·경북 김종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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