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따라 풍류여행(13)삼척 -척주동해비- 미수 허목과 안동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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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8-01-17 11:01 조회1,862회 댓글0건본문
허목(許穆)
1595(선조 28)∼1682(숙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1. 가계 및 성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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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자(磁)의 증손으로, 별제 강(橿)의 손자이고, 현감 교(喬)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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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력과 행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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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년 인조의 생모 계운궁 구씨(啓運宮具氏)의 복상(服喪)문제와 관련하여 유신(儒臣) 박지계(朴知誡)가 원종의 추숭론(追崇論)을 제창하자, 그는 동학의 재임(齋任)으로서 임금의 뜻에 영합하여 예를 혼란시킨다고 유벌(儒罰)을 가하였다. |
3. 복제논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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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시열 등 서인(西人)은 《경국대전》에 의거하여 맏아들과 중자(衆子)의 구별 없이 조대비는 기년복(朞年服:1年喪)을 입어야 한다고 건의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 |
4. 왕의 총애와 실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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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년(숙종 1) 이조참판·비국당상(備局堂上)·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를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되고, 의정부우참찬 겸 성균관제조로 특진되었다. |
5. 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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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 기(氣)는 이(理)에서 나오고 이는 기에서 행하므로 이기를 분리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
허목과 안동김씨
문온공의 8대손인 김극녕은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 전라도사를 역임하였습니다.
배위는 그 유명한 백호 임제의 따님이십니다.
백호 임제의 또 다른 사위가 양천허씨 허교(許喬)입니다.
허교의 아들이 미수 허목이니 허교와 도사공(김극녕)은 동서지간이며 미수 허목과 성균진사(김당-김극녕의 아들)은 이종사촌이 됩니다.
허교(許喬)
1567(명종 22)∼1632(인조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유악(維악)·수옹(壽翁). 별제 강(?)의 아들이다. 부인은 임제(林悌)의 딸이다.
어려서 수호자(垂胡子)에게서 시(詩)를, 신붕생(申鵬生)에게서 《사기》를 배우고 박지화(朴枝華)의 문인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피난지 토산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많은 가족을 이끌고 각지를 전전하며 이들을 부양하였다. 재상 김명원(金命元)의 천거로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이 되고, 그뒤 직장·판관을 거쳐 거창현감이 되었다.
인근 읍에 살인자가 있었는데 세력 있는 자가 그를 숨기고 오래도록 의옥(疑獄)이 되게 하였다. 이에 그가 추관(推官)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였다.
1632년(인조 10) 포천현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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