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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묘지 제도6 -우리 문중의 고려 조선초 분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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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1-13 21:40 조회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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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우리 문중의 고려 조선초 분묘 조사

1. 경순대왕(휘 傅) 이후 7대 묘소(은열, 숙승, 일긍, 이청, 의화, 민성, 효인)는 현재 실전 상태임

2. 충렬공(휘 方慶) 묘소

 가. 조성시기 : 1300년. 그러나 약 96년간(1498-1594년) 실전했다가 1594년 발견되어 새로 축조하였고, 1626년에 개축(경상도 관찰사 휘 시양 주관)한 이후 자주 사초했을 것으로 추정.

 나. 위치 :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동 능골 산 19-1번지

 다. 묘소 형식 : 방형. 1단의 판석을 사각으로 두르고 그 위에 봉토함. 봉미엔 둘레석이 보이지 않고 땅으로 연결됨.

 라. 묘소 석물 : 상석1, 묘비2, 동자석2, 문관석2, 망주석2

 마. 내용 : 충렬공의 묘소로 국내 몇 안 되는 고려중기 묘소 중의 하나이다. 사각의 호석을 둘렀으며, 구묘비는 1602년(선조35)에, 신묘비는 1966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비문은 외손인 李時發(1569∼1626. 경주 인. 형조판서역임)이 지었으며, 신묘비는 후손 金思玉(충렬공23세손)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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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영공(휘 순-충렬공 3子) 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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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묘역 제원 (출전 : 안양문화유적총람. 안양시 문화공보담당관실)

  1)종별번호 : 0704-31-015

  2)시 대 : 고려 충숙왕 8년(1321년), 재건립 1943년

  3)규 모 : 약 40평

  4)소 재 지 : 관양동 산74번지

  5)지 목 : 임야

  6)재 료 : 토목

  7)봉분 : 높이-120㎝, 지름-360㎝,

  8)상석 : 가로-112㎝, 세로-80㎝, 두께-62㎝

  9)향로석 : 가로-32㎝, 세로-20㎝, 높이-38㎝

  10)망주석 : 2기, 높이-160㎝. 지름-35㎝,

  11)양천허씨 비 : 오석, 비고-100㎝, 너비-28㎝.

       지대석 : 가로-60㎝, 세로-38㎝, 두께-28㎝.

*대부분의 석물은 최근에 세운 것.

 

  12)묘비 : 1948년에 세운 것임.

    가)비갓 : 가로-90㎝, 높이-50㎝, 두께-63㎝

    나)묘비 : 높이-152㎝, 너비-59㎝, 두께-27㎝

    다)지대석 : 가로-92㎝, 세로-64㎝, 두께-24㎝

 나. 묘역 조성과정(<안동김씨 파보-제학공, 안렴사공, 익원공>에서 인용)

  (1)1942년, 개풍군 임계년 가정리 마산 동록 장씨 성을 가진 무덤 부근에서 誌石을 발견함

  (2)1943년, 봄에 경기도 안양시 관양1동 후록 간좌에 문영공의 유해를 옮겨 모심. 이때 배위 제평군부인 양천허씨 영단을 함께 설단함 (이 산은 익원공 16대손 讚源씨 소유의 선산으로 경 내의 한 장지(葬地)를 문영공 묘소지로 헌납한 것임).

  (3)1946년 문영공 묘소 앞에 석물과 묘갈을 세움. 이때 묘갈은 묘지명의 글을 그대로 옮김.

  (4)그 후 讚源씨 후손이 이 산을 타인에게 매도할 때에 문영공 묘역 300여 평을 문영공파 문중에 희사하여 제,안,익 3파 공동명의로 등기를 필함.

 다. 파보(제학공파보. 1990.간.151p)에 기록된 문영공 묘지석 발견 및 이장 경위 기록 내용- 경위 기록 내용

 오호라 공의 묘소는 실전된 것이 어느 시대인지도 모르다가 壬午年(1942년) 봄에 지석을 개풍군 임계년 가정리 마산 동쪽 언덕에서 발견되었는데 장씨 성을 가진 무덤 부근이다. 받들어 살핀 후에 옛 자리에 수호하려 하였으나 장씨들의 방자한 악행과 비상의 세력이 있어 부득이 익년 癸未(1943년) 봄에 시흥군 안양시 관양1동 뒷산 언덕 간좌에 옮겨 모시었다. 이때 배위 제평군부인 양천허씨 영단을 함께 설단하였다. 이 산은 익원공 16대손 讚源 소유 선산 내의 한 장지(葬地)인데 헌납한 것이다.

* 비석 건립 : 공 몰 후 625년(1946년) 갑신 10월 일

문영공 21대손 若浩 謹識

문영공 21대손 舜默 謹書幷篆

문영공 22대손 達演 幷識

 

3. 충숙공 (휘 承用 : 충렬공의 손, 方慶-愃-承用) 묘소

 가. 생몰년 : 1268(원종9)∼1329(충숙16). 고려 말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 提學)을 지내고 시호는 충숙임.

 나. 장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묘지석-국립 박물관 소장)

 다. 묘소 해설 : 묘지명에 <1329년 4월에 개성 묵동(墨洞)의 북쪽 산기슭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개성에서 후에(구체 연대 미상) 전남 강진으로 이장한 후 여러 번에 걸쳐 개축, 사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 모습은 최초의 상태가 아닌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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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락군 (휘 厚. 충렬공의 증손, 方慶-愃-承用-厚)

가. 생몰년 : 미상. 충혜왕(忠惠王) 때 음직으로 검교(檢校), 첨의평리(僉議 評理)를 지냄.

나. 장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다. 해설 : 실묘라고 하나 정확한 고증이 없다. 형식도 최근에 개축하여 최초 조성당시의 모습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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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사공(휘 七陽, 충렬공의 현손. 方慶-愃-承用-厚-七陽)

가. 생몰년 : (1350 ~1420 추정). 여말(麗末)에 수안군사(遂安郡事)를 지 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강진(康津) 선묘하(先墓下)에 은거(隱居)함

나. 장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묘지석-국립 박물관 소장)

다. 해설 : 실묘임은 사실이나 최근에 개축하여 최초의 상태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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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서공(휘 成牧. 충렬공 현손. 方慶-愃-承用-玖-成牧)

가. 생몰년 : 미상. 고려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으며, 1392년 조선(朝鮮)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 인 충남 연기(戀岐)에서 은거했다

나. 장소 : 충남 연기군 전동면 미곡리 학당

다. 해설 : 1992년에 대대적으로 사초하면서 묘비를 새로 세웠는데, 원 봉분은 그대로 두고 숯을 채우고 다시 봉분을 넓고 높이 세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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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안정공(휘 九德. 충렬공 현손 方慶-愃-承澤-冕-九德)

가. 생몰년 :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딸 명빈은 태종의 빈이다.

나. 장소 : 경기 여주군 가남면 원승리

다. 해설 : 오랫동안 실전하였다가 25년 전 쯤(1982년 경)에 찾음. 원형의 조선조 일반 묘형식임. 석물은 묘비, 상석이  있고 문인석은 1개만 주변 땅 속에 방치되어 있음. 최초 상태에서 많은 부분 훼손된 것으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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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안렴사공(휘 士廉. 충렬공 현손. 方慶-恂-永煦-蕆-士廉).

가. 생몰년 :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1405년(조선 태종 5년) 추정. 고려말 안렴사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은둔불사함. 두문동72현.

나. 장소 : 충북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

다. 해설 : 공의 묘는 실전되었다가 몰후 273년만인 1678년(숙종4 戊午)에 선생의 증손 양성현감 휘 吹의 실전한 묘소를 찾다가 돌무덤에서 평총한 誌石이 발견되어 오늘에 이름. 원형의 봉분. 최초의 상태를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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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익원공(휘 士衡. 충렬공의 현손. 方慶-恂-永煦-蕆-士衡)

가. 생몰년 : 1341(충혜왕 복위2)∼1407(태종7). 조선 태종조 좌정승 역임.

나. 장소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다. 해설 : 조성 당시(1407)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육각묘로서 조선초기 한강 북부지방에 잠시 나타났던 형식이다. 2단의 편석을 6각으로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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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자료 종합>

1. 분석 대상 : 총 9기-충렬공, 충렬공 자1(순), 손1(승용), 증손1(후), 현손5(군사공, 전서공, 안정공, 안렴사공, 익원공)

2. 충렬공의 묘소는 발견 당시인 1594년, 또는 본격적인 묘소 사초시기인 1626년(충익공 휘 시양, 경상도관찰사 시절 주관)에 고려의 분묘 양식인 방형, 또는 장방형 형식으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됨

3. 총 9기 중 조성 당시(고려 중 후기, 조선초)의 분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익원공(휘 사형) 1기로서 육각형임

4. 전서공(휘 성목), 안정공(휘 구덕)의 분묘는 조선초의 묘소로서 최초 조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주장하거나 보존하고 있다고 추정되는데 모두 원형(圓形) 묘이다.

5. 총 9기 중 상기 4기의 묘소(충렬공-휘 방경, 익원공-휘 사형, 전서공-휘 성목, 안정공-휘 구덕)를 제외한 5기의 분묘는 모두 최근에 개축하여 최초 조성 당시의 원형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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