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묘지 제도3 -석사논문(황순녀.경북북부지역 고려분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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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1-09 11:06 조회1,881회 댓글1건본문
4. <경북 북부지역 고려분묘의 형식과 편년>(황순녀. 안동대학교 대 학원. 사학과 한국사 전공. 2004년 2월. 석사논문)
가. 신분에 따른 묘지 형식 4가지
1)토광묘 : 일반 서민계층의 무덤. 묘광을 파고 시신을 직접 안치한 형식
2)목관묘 : 일반 서민계층의 무덤. 묘광 내부에 목관을 안치한 토광묘 형 식
3)석곽묘 : 곽을 돌로 쌓고 그 안에 목관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외형은 원칙적으로 원형봉토분인데 일부 장방형, 방형도 있다.
수혈식은 관을 위에서 내려 넣는 방법으로 장대석, 판석, 또는 할석으 로 축조하고 천장석을 덮은 석곽묘로 지하에 묘실을 축조하고 있다. 1 인장을 기본으로 하며 장축방향은 지형성을 따랐다.
횡구식은 관을 옆으로 넣기 위해 출입 시설을 가지고 있는 석곽묘로 서 세 벽을 먼저 축조한 다음, 시신 납입 후 마지막 단벽을 축조하는 방법
4)석관묘 : 묘광을 파고 그 안에 판석으로 상자형의 석관을 조립한 구조 나 관을 돌로 쌓아 만들어 목관을 사용하지 않고 시신을 직접 안치한 것.
나. 경북 북부지역 발굴 분묘 현황
<상주 청리 지역>
1)상주 청리 지역 토광묘(21기)
가)외부형식 : 장방형-12기, 세장방형-3기, 미상-6개
*방형-1:2. 장방형-1:2,4. 세장방형-1:4 이상
나)평균 묘광크기 : 길이 : 180-230cm, 너비 : 60-70cm
다)기타 : 묘광은 주로 장방형, 바닥은 마사토나 마사토가 섞인 사질토
2)상주 청리 지역 목관묘 (29기)
가)무보강식 : 8개. 보강식 : 21기
나)못을 사용한 것-15기, 나머지는 결합방법, 나무쐐기로 결구함
다)묘광의 평면비 : 대부분 장방형
3)상주 청리 지역 석곽묘 (25기)
가)수혈식-20기, 횡구식-5기
나)묘광의 장축방향 : 대부분 등고선 방향과 직교
다)석곽깊이는 대부분 60cm 이하
4)상주 청리 지역 석관묘 (53기)
가)수혈식-45기. 횡구식-8기
나)묘광의 장축방향 : 44기가 등고선 방향과 직교
<상주 성동리>, <안동 정하동>, <안동 안막동> <봉화 금봉리> 생략
*<안동 녹전면 서삼리>(1980. 12.3--7. 안동대학교 박물관 조사)
1)벽화 고분 주위에는 10여기의 분묘가 산재. 경작이나 도굴에 의해 파괴 가 심함. 이 벽화 고분은 고려 전기 귀족체제가 정비된 직후 안동에서 큰 세력을 갖고 있던 호족 또는 호족 출신 귀족 관료의 것으로서 고구 려적 전통을 기진 방형봉토 석곽분이며 외부의 형태와 내부 벽화는 귀 족계층의 분묘양식이나 벽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2)횡구식, 방형분, 화강암 지대석으로 석곽의 둘레를 장방형으로 쌓고 그 위에 봉토를 올렸다.
3)봉분과 약 40cm 떨어져서 봉분의 형태에 따라 장방형 형태로 돌담이 만들어져 있다. 남쪽에는 초석이 깔림.
4)장축은 정남북. 남쪽벽석은 출입구로 사용
5)석곽의 크기 : 229×96×90
6)석곽의 4벽에 회를 바른 후 그 위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천정에는 회 를 바르지 않은 상태의 성수도와 운문도가 그려져 있다.
7)무덤을 완성한 뒤 의식을 행한 듯한 유구가 있는데 유구 안에는 불에 태운 짐승 뼈가 있었다. 이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진 개의 뼈로 추정.
다. 유물 부장형태
1)머리위, 허리, 발밑, 전면, 목관외측 부강토, 묘광외 부장시설, 등 6군데 에 고루 나타남. 머리 위 부장이 가장 많이 나타남.
2)토광묘에서는 허리 부장이 많음.
3)석곽묘에서는 전면 부장(머리, 허리, 발밑 부장)이 많았음.
4)안동 서삼리 벽화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도굴로 인해 거의 없어졌으며, 석곽 내부에서 동국중보 등 동전 16개와 관고리, 철판조각 등 관재 일 부와 헝겊에 쌓인 철편, 토기 등이 출토 됨.
동전은 고려전이 4점, 당전이 1점, 송전이 10점임. 이 동전들은 대부분 10세기 말에서 12세기 초까지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벽화 사신도를 비교할 만한 것으로 연대가 확실한 것은 허재 (1062-1114)의 벽화인데 주작과 현무는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이로 볼 때 이 무덤을 대체로 12세기 초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삼리 확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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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리는 충렬공 묘소가 있는 죽송리 바로 아래임. 주목되고 있는 묘소임.
혹시 이곳에 발굴된 분묘들이 우리 문중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나닐지 하는 의문이다.
<충렬공의 배위-죽주박씨, 조-휘 민성, 증조-휘 의화, 고조-휘 이청, 5대조-일긍> 등의 묘소로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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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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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안동의 태홍종친님, 상기 내용과 관련하여 안동대학 박물관팀의 발굴기, 발굴유물 등에 대한 자료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 상기 서삼리에 고려 고분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함께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