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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孝子安東金公(在準)紀行碑甲戌 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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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회 작성일08-01-10 00:48 조회1,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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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峯先生遺書卷之三十九(회봉선생유서 권39)


碑(비) 


孝子安東金公 紀行碑 甲戌(효자 안동 김(재준)공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 갑술년에 짓다.


孝子安東金公在準旣沒之二十五年甲戌 湖南谷城士人 安在晦 趙明植 吳基泳 柳建永等 百一十有六人 聯名走書 幣以請于晉康河謙鎭 曰孝子 故恭靖王時上洛伯士衡之後也 號敬庵 天性至孝 親有疾 彌年行禱 無所不誠 凡侍奉諸節 皆躬爲之 不使家人代之 喪葬一遵禮制 不用堪輿禍福之說 卜宅兆 僅三武 而近朝夕哭省不以寒暑風雨而懈焉 積其誠意 感動天聰 用能闡先世四孝 今竹里之烏頭四閭者是也

효자 안동 김재준공이 돌아가신지 25년인 갑술년에 호남 곡성 선비 안재회, 조명식, 오기영, 류건영 등 116명이 연명하여 진강 하겸진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효자는 바로 공정왕(朝鮮의 2대임금, 定宗) 때의 상락백 김사형의 후예입니다. 호는 경암(敬庵)으로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부모님이 병환이 있음에 연중 기도하기를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모든 절기를 모시고 받들기를 모두 몸소 행하고 집사람으로 대신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초상에 장례까지 예법을 한결같이 준수하고 떠도는 화복의 설을 쓰지 않고, 묘자리는 겨우 삼무(三武 : 좋은 방향을 맞춤)를 지키었으나 조석으로 곡하고 살피기를 춥거나 덥거나 비바람에 게을리 아니하니 그 성의를 다함이 하늘을 감동시킬만 하고, 선대의 네 효자를 천명할 만하니 지금 죽리의 ‘오두사려(烏頭四閭)’가 이분들(그의 선조)입니다.


孝子有一弟在規 及其分門也 析與田宅器物其半 先墓皆置祭田 不替其香火 又放范氏義庄 劃錢穀以濟宗族貧乏 凡此皆孝子實行 所塗於一鄕人耳目者 非可誣也 而表宅樹風之典 顧今無由得焉 惟立石逵道 傳示久遠 吾輩責也 是敢□惠吾子一言 吾子圖之

효자의 아우 재규(在規)가 분가함에 전택과 기물 절반을 나누어주었고 선묘마다 모두 제전(祭田)을 두어 그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범씨의장(范氏義庄)을 본받아 돈과 곡식을 나누어 종씨 친족의 빈핍을 구제하였으니, 이 모두가 효자의 실제 행적으로 온 고을 사람들의 이목에 목도한 것이니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효자의 책에 이 집을 정표하려해도 이제는 할 길이 없어, 다만 큰 길가에 비석을 세워 오래도록 전하여 보이는 것은 저희들의 책무이니, 감히 선생님의 한 말씀 내려주십시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 : 글자 확인요!


余作而言 曰世降俗弊 天下之寒心久矣 而諸君子獨能以表章倫紀爲心 可謂知所本矣 吾安以不文辭諸 遂爲撰 次其事而系之以銘曰

내가 일어나서 말하였다. “세상 풍속이 무너지고 피폐하여 온 천하가 한심한지 오래인데, 여러 군자(116명)들은 홀로 윤리 기강을 표장함으로 마음을 삼을 수 있으니, 근본을 안다 할 만하오. 내 어찌 못난 솜씨기로 사양하리오?”드디어 (비문을) 지어 그 사실을 적고 명문을 붙인다.


安東之世 안동 일문이

世趾其孝 대대로 효자로다.

維竹有谷 죽리에만

四閭竝表 네 효자 정려가 나란하네.

□公至行 그 자손공의 지극한 행실 *□ : 胤이 아닐까 생각함

可四而五 넷이요 다섯이라.

天王不作 천왕이 일어나지 않으니

孰幽能耀 누가 죽은 이를 빛나게 하리오

輿情斯惻 여론이 이를 슬퍼하여

刻石逵道 큰길가 돌에 새기네

秉□之同 이륜을 같이함이지 *□ : 彝가 아닐까 생각함

非以阿好 아첨함이 아닐세

尙其來後 다가올 후손들이여

是則是效 이를 본받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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