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선조 추가 (김변광, 김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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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4-24 03:04 조회1,833회 댓글0건본문
청백리 선조 추가 (김변광, 김태기)
우리 선안동김씨 선조중 청백리에 녹선되신
★익원) 김무
★문온) 김연수
★서운) 김수
★제학) 김시양
★ ? ) 김두남 선조와
★제학) 김득신 선조를
은회 종친님께서 발굴하여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외에
청백리로 녹선되신 ★제학) 김변광 선조와
청백하다는 평을 들은 ★안렴) 김태기 선조기록을 소개합니다.
▣ 디지털한국학
★제학) 김변광(金#변07光)
1694(숙종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실(景實). 할아버지는 승지 구만(龜萬)이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출중하여 남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교에 임명되었다.
그뒤 병조정랑과 용강현령을 지냈는데, 이때 훌륭한 이름을 남겼다.
1765년(영조 41) 공조참의에 오르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돌아와서 후진들의 교육과 경전을 외며 자기수양에 진력했다.
죽은 뒤 1796년(정조 20)호군 채홍(蔡弘)의 천거로 청백리에 올랐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牧民心書. 〈權五虎〉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서울 600년사 인물 편)
★제학) 김변광 (金季光)
1694(숙종 20)∼?.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실(景實)로 승지 김구만(金龜萬)의 손자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경종 3년(17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대교에 임명되었다.
그뒤 병조 정랑과 용강 현령을 역임하고, 영조 41년(1765) 공조 참의로서 벼슬에서 물러난 뒤 후진 양성에 힘썼다.
용강 현령으로 있을 때 권력을 쥐고 있던 윤모(尹某) 재상의 청탁을 물리친 일화가 목민심서에 전하고 있다.
정조 20년(1796) 호군 채홍(蔡弘)의 천거로 사후에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디지털한국학
★안렴) 김태기(金泰基)
1602(선조 35)∼1646(인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형숙(亨叔), 호는 무위당(無爲堂). 아버지는 장흥부사 희(憙)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2년 정언이 되고, 그뒤 양사(兩司)를 거쳐 1645년에 장령을 역임하고 태인현감을 지냈으며, 영광군수로 재직중 죽었다.
청백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南岳集(趙宗著). 〈金東洙〉
▣ 김영환 -
▣ 김항용 - 김득신, 김변광, 김태기 등은 여러 문집이나 인명 소개서에 청백리로 소개 되고 있으나 청백리 공식 명단에는 없어 그 출전을 분석 중입니다.
▣ 김은회 - 저또한
▣ 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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