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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문온공의 교류인물(3) 도은 이숭인 교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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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4-10 16:45 조회1,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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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학음집에 실려 있는 도은선생에데 준 시를 살펴보면

 

[10. 관물재매화득리자] [148. 수자안이숭인견기차운] [164. 약자안이숭인 부지] [165. 제자안관물재] [271. 추흥정시]

[368. 박비감댁 상화 희정 관물재] 둥이 있다.

 

도은 선생이 척약재께 드릴 시 한 수를 옮겨보면

 

   重九感懷            陶隱   李崇仁

 

    去年重九龍山顚      작년 구월구일 용산 추흥정에서

 

    坐客望若登神仙     앉아계신 모습 바라보니 신선이 오르는 듯

 

    達可放歌徹寥廓     정포은  노래하니 하늘을 뜛고

 

    敬之下筆橫雲煙     김척약재 글을 쓰니 구름이 도는 듯 하네

 

추흥정은 서울 용산에 있던 정자인데 봉익대부 김공의 소유이었다 한다.

이 이름을 지어주신분도 척약재공이시며 현판도 척약재공으 친필이었다.

 

271)秋興亭詩

    추흥정시

奉翊大夫金公退居漢陽之龍山。構亭于居第之東。予自驪江回。上其亭徘徊瞻眺。談笑移日。公請予名之。旣入京。會于子安宅。議其所以名亭之義。予言之曰。龍山地甚沃饒。凡所生之物特爲豐脆。又有漁稻游賞之美。故公樂此而居焉。以秋興顏之何如。諸君皆日善。於是濡翰作三字。仍請子安爲記。乃與諸君同賦云。

봉익대부김공퇴거한양지용산  구정우거제지동  여자려강회

사익정배회첨조  담소이일  공청여명지  기입경  회우자안

댁  의기소이명정지의  여언지왈  용산지심옥요  범소생지물

특위풍위  우유어도유상지미  고공락차이거언  이추흥안지하

여  제군개일선  여시유한작삼자  잉청자안위기  잉여제군동

부운

龍山秋色澹人心。용산추색담인심

雲淨江澄草樹深。운정강징추수심

竟日高亭誰是伴。경일고정수시반  誰=누구 수

一雙野鶴一張琴。일쌍야학일장금


魚肥稻熟水雲鄕。어비도숙수운향

歸去來歌聲短長。귀거래가성단장

可惜安仁空有賦。가석안인공유부

我公曾是佩金章。아공증시패금장  佩=노리개, 찰. 패


早歲承恩直紫宸。조세승은직자신  宸=대궐, 집 신

如今七十臥江濱。여금칠십와강빈  濱=물가 빈

若爲拂袖從公去。약위비유종공거  拂=털불, 떨칠불

秋興亭邊共作隣  추흥정변공작린

번역문
봉익대부 김공이 한양의 용산에 물러나 살면서 기거하는 집의 동쪽에 정자를 얽었다.  내가 麗江에서 돌아와 그 정자에 올라가서

배회하고 바라보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이튿날 공이 나에게 그것에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는데 개경에 들어가자

子安 이숭인 댁에 모여서 그 정자의 이름이 지녀야 할 뜻을 논의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용산은 매우 비옥하고 풍요하여

무릇 나오는 물건이 특별히 풍요롭고 부드럽다.  또 고기 잡는 것과 벼농사 짓는 모습을 노닐며 감상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공이 이것을 즐기며 여기서 사니 ‘추흥’이라고 이름을 짓는게 어떤가?”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좋다고 하였다. 

이에 붓을 먹에 적셔 세 글자를 쓰고, 인하여 자안(이숭인)에게 기문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과 함께 시를 읊었다.


용산의 가을 빛에 사람의 마음이 담담한데

구름은 깨끄사혹 강은 맑으며 풀과 나무가 무성하네

하루가 다 가도록 높은 정자에서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항쌍의 학과 한 벌의 거문고라네

(척약재학음집에서 )


추흥정기(秋興亭記)

용산(龍山)은 본래부터 산수(山水)를 즐길 수 있는 경치가 있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란다.

강에는 배가 운행하고 육지에는 수레가 통행하여 이틀 밤낮이면 경도(京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별장을 마련하는

귀인들이 많다. 전(前) 봉익(奉翊) 김공(金公)이 벼슬에서 물러나와 여기에 쉬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다. 살고 있는 집 동쪽에서 우연히

한 높은 언덕을 발견하였다. 높고 길게 굽어서 형상이 배를 엎어 놓은것 같다. 드디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소나무를 베어 서까래를

걸고 띠풀을 베어 지붕을 덮었다. 땅이 높고 모진 곳은 평평하게 만들고 나무가 빽빽하게 가리운 것은 성기게 솎아내니 두루 돌아다니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좋지 않은 것이 없다. 이에 김 비감(金祕監=척약재 김구용) 에게  정자의 이름을 청하여 추흥정(秋興亭)이라는 석 자를

써서 현판을 달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 한두가지 그럴 듯한 것을 찾아서 글을 쓴다.
천지의 운행은 무궁하고 사계절의 경치는 서로 같지 않다. 우리의 즐거움도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건대, 이 정자는

봄날에 비로소 따뜻하고 동풍(東風)이 화창하게 불 때면 숲의 꽃과 들의 풀들이 붉고 깨끗하며 푸르고 고울 것이다. 여기에서 높은 소리로

노래 부르며 오락가락하면 한가한 마음은 마치 ‘나는 증점을 허여한다.’는 기상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햇빛이 공중에서 흘러내려 쇠라도

녹이고 돌이라도 녹일것 같으며 대지(大地)는 이글거리는 화로 속과 같다. 이때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그늘 밑에서 맑은 바람을 타고 옷깃을 나부끼며 산보(散步)하면 시원하고 호한한 것이 마치 열어구(列禦寇)가 바람을 타고 노는 것같을 것이다. 차가운 기운은 얼어붙고 외로운

기러기는 구름 속에서 울고 등륙(滕六)이 재주를 피우니 강과 하늘이 한 빛이다. 조각배를 타고 오락가락하면서 높은 회포와 아담한 운치는 섬중(剡中)에 가는 것과 비슷하거늘 김 비감(金祕監)은 어찌 유독 추흥(秋興 가을의 흥취)을 선택하였는가.
대체로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추워서 사람들이 모두 괴로워하지만 오직 봄철의 온화함과 가을의 청량함은 사람에게 알맞다. 하지만 온화한

기운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나태함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욕수(蓐收)가 명령을 관장하고 맑은 상성(商聲)이 음률 맞출 때 같으면 하늘 끝과

땅끝은 맑고 밝고 시원하게 트인다. 그 기운이 사람에게 나타나면 비록 부귀와 공명과 같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도 변하여 맑고

서늘한 기분이 된다. 4계절의 경치 중에 가을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가을의 경치는 이 정자에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김 비감이

명명한 뜻도 여기에 있는 것인가.
봉익 김공은 이미 장년(壯年)에 중국에서 벼슬하여 그가 사귄 사람들은 모두가 고량진미를 먹으며 초헌을 타고 면관(冕冠)을 쓴 부귀한

무리들이며, 그의 노닐고 관람한 것은 다 높고 사치스럽고, 넓고 큰 것의 최대한 것이었다. 이제 안락하게 걷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상쾌하며

시원한 기분으로 한 점의 먼지도 없으니, 대개 맑은 자이다. 추흥이라는 현판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봄, 여름,

겨울의 이 정자의 좋은 경치를 그대가 곡진하게 드러내어서 남김이 없게 하면서 추흥(秋興)의 아름다움은 제시만 하고 결론을 말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다른 날 김 비감을 이끌고 복건(幅巾)과 청려장으로 이 정자에 공(公)을 찾아가서, 무릉(茂陵)의 기사

노래하고 안인(安仁)의 부(賦)를 화답하게 되면 추흥설(秋興說)은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 기문으로 쓴다.

 

(도은집에서)

 

 

 

추흥정에 제하다[題秋興亭]

안】 정자는 용산강(龍山江)에 있는데 이숭인(李崇仁)의 기(記)에 의하면 김봉익(金奉翊)이 이 정자를 창건하고,

김비감(金秘監)이 추흥(秋興)이라 편액(扁額)했다고 하였다.

김후는 본래부터 아상을 지녀 / 金侯有雅尙
산수 좋은 고을로 돌아왔네 / 歸來山水鄕
높은 데 올라 높은 정자를 짓고 / 登高構危亭
낮과 밤을 여기서 노닌다오 / 日夕此倘徉
기이한 봉우리를 우러러보고 / 仰視峯巒奇
기나긴 강 흐름을 내려다보면 / 俯看江流長
벼와 기장 벌판을 덮고 / 禾黍被原野
솔과 국화 길가에 가득하네 / 松菊滿道傍
서포에 지는 해는 붉고 엷은데 / 落日淡西浦
동산에 흰 달이 둥실 떠오고 / 素月生東岡
청려장 손에 들고 구경나가니 / 藜杖極孤賞
옷깃에 선들기운 스며들어 / 衫袖領新凉
가을바람에 이는 무한한 흥은 / 秋風無限興
넓고 커서 헤아릴 길이 없네 / 浩然不可量
삼봉 그 아래에 내 집이 있어 / 我家三峯下
두 곳은 멀리 서로 바라다보이니 / 兩地遙相望
어느 때 그곳으로 돌아가서 / 何當歸去來
한 번 웃고 술잔 함께 들어 볼거나 / 一笑共深觴

(삼봉집에서)

 

東人詩話(동인시화)   徐居正,  卷下


李陶隱重九感懷詩 巨年重九龍山전  座客望若登神仙
達可放哥徹寥廓 敬之下筆橫雲煙 達可則圃隱
敬之則척若齋也 陶隱於圃隱 獨讚其哥 而不及詩
雖以圃隱之大道 顔有不悅處 古之大人君子 以詩自重如此


번역

陶隱 李崇仁의 詩 中에 "重九感懷"가 있는데

작년 구월구일 龍山 산마루에서(秋興亭에서) 巨年重九龍山전 
앉아계신분 바라보니 神仙이 오르는 듯     座客望若登神仙
達可의 노래는 寂寞한 하늘을 꿰뚫었고     達可放歌徹寥廓 
敬之의 글솜씨는 구름과 연기속에 노니네   敬之下筆橫雲烟


달가는 포은 정몽주요, 경지는 척약재 김구용이다.

도은이 포은에 대하여 유독 그의 노래를 칭찬하고

그의 시에 대하여서는 칭찬하지 않아서

포은같이 큰 도량을 가진 사람도 언짢아 하였으니,

옛 대인군자가 시를 칭찬함에 자중함이 이와 같았다

(동인시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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