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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동락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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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1-07 22:57 조회4,4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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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창설이래 최대규모의 대승을 이룩한

 

 

<동락리전투>

 

동락리전투

 

춘천지역의 승리를 거둔 국군제6사단

 

이어서 북한군제2군단 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이때 북한군 제2군단은 공격속도를 높이기위해 예비의 제15사단 을 이용해서 7월3일 장호원을 점령한뒤 음성방향으로의 공격을 게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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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군6사단 김종오대령은 제7연대장 임부택중령에게 장호원을 탈환하도록 명령하였다

 

사단장의 명령을 이어받은 국군제7연대는

 

제1대대는 음성에서 무극리 방향으로의 공격을 명령하였고

 

제2대대는 음성북쪽 부용산일대에 배치

 

제3대대는 동락리에서 생극방향으로 공격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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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무극리동락리일대에서 북한군과의 교전이 발생하고

 

동락리일대에 자리를잡고있었던 제3대대 는 포위될것을 우려해 허가없이  대대를 철수시켰다.

 

 

7월7일 오후

 

동락리에 도착한 북한군은 주민들의 증언과 정찰대의 보고에따라 국군이 철수한것을

 

확인하고 동락리초등학교일대에서 석식을 위해 병력을 정지시켰다

 

이를 관측한 제2대대 김종수소령 은 대규모병력이 동락리일대에 집결한것을 확인하고

 

이것이 국군제3대대인지 아니면 북한군인지 애매해하던때에 동락리교사로 재직중에있던

 

김재옥여교사가 ''저 사람들은 북한군이다'' 라고 신고해 이를토대로 즉시 정찰대를 보내고

 

그들의 복장과장비를 통해 북한군임을 확인할수있엇다.

 

그들이 북한군임을 확인한 제2대대는 고민에 빠졌다

 

고작300여명의 소총수로 북한군2000천여명을

 

상대로 교전을 벌일시 전대대 까지 위험에 빠지게될수있는 확률이 매우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수많은 병력을 그냥 무시할수만은 없었기때문에  제2대대의

 

고민은 갈수록 커져만갔다

 

잠시뒤 제2대대는 결국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병력을 동락리일대에 은밀히 접근시킨뒤  박격포와 소총수를 중심으로 포위 공격을 개시하였다

 

(바로전날인 7월6일

 

제7연대장은 제3대대가 무단퇴각한것을 확인하고 제3대대장을 질잭시킨뒤 다시 동락리 일대로

 

이동하도록 명령하였다. 7월7일 동락리 동쪽 신덕저수지 부근을 이동하던중 때마침 제2대대의 공격으로 퇴

각중인 북한군선두를 발견하고 곧바로 교전상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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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서는 제2대대가, 선두는 제3대대가 둘다 동시 공격하는 아주 우연적인 상황이 벌어졌던것이다

 

 

이 동락리일대의 전투를 통해 국군은

 

<2186명사살, 포로132명, 장갑차4대 ,트럭60대, 지프15대>

 

를 노획하는 국군창설이래 최대규모의 전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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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쟁과여교사>

1966년

감독:임권택

주연:엄앵란

 

한여교사의 제보로 대승을 이룩한 이전투실화는 나중에 임권택감독의

 

''전쟁과 여교사''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했다

 

 

ps:국군이 퇴각한뒤 동락리일대의 주민들은 북한군패잔병들에의해 무참히 학살되었다고합니다

 

 

자료출처:소설 그때그날, 야후거기,네이버영화

(저는 전략가가 아니기에 저지도는 정확하지않을수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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