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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공(諱 徽)친필 재공개(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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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03-10 17:39 조회1,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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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공(諱 徽) 친필 재공개>

지난 3월 8일(본 홈 게시판 1204번) 올렸던 판서공(諱 徽-荷潭公 諱 時讓의 아드님) 친필 사진을 잘 보실 수 없게 올려 드려 대단히 송구합니다. 이에 다시 올렸습니다.  지난 2. 26일 규장각에서 발견한 자료입니다. 송구합니다.

 아울러 모든 분들이 인터넷상의 서버에 올려져 있지 않는 사진을 손쉽게 우리 게시판에 올리실 수 있는 방법 강구를 한미르측에 요청했습니다. 답이 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kimhuy1.jpg

 

*판서공. 김 휘(金 徽) : 1607(선조 40)---1677(숙종 3)

  자(字)는 돈미(敦美), 호는 만은(晩隱) 또는 사휴제(四休第).

  1633년(인조 11) 생원·진사과에 합격하고 1642년(인조) 문과에 급제함. 이어 홍문관에 들어 갔으며, 1652년(효종3)에 수찬(修撰)이 되었다. 또한 임금(효종)의 시에 화답한 희우시(喜雨詩)를 지어 임금으로부터 표피(豹皮:범의 가죽)를 하사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의주부윤을 지내고 숙종조(肅宗朝)에는 강화·개성유수(留守)를 거쳐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경상도,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예조·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수(壽) 71세. 하담 김시양(荷潭 金時讓)의 二子. 묘는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개향산에 있다.

  김항용




▣ 김주회 - 대단한 발견이십니다. 김휘 선조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다"는 기록은 있어도 글씨에 대해서는 기록을 몰랐었는데 현재까지 어느 자료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기념비적인 발견을 하셨습니다. 다른 글씨나 그림이 더 있는지요? 그리고 지난번에 규장각에서 발견하셨던 김희수-김로 이가서법 복사본을 본 게시판이나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을까요?
▣ 김항용 - 물론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함께 우송 준비중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주신 <증평문화> 중 더 부탁드린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을런지요.
▣ 김재원 - 제천의림지와 선조님의 친필 확대해서 집안에 걸어두면 훌륭한 표구가될것같고 집안의 보물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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