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궁동 안동권씨 묘역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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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20-05-07 19:31 조회980회 댓글0건본문
구로구 궁동 안동권씨 묘역 탐방기
[선조의 부마 길성위 권대임(權大任:정선옹주) 신도비]
오늘은 구로구 궁동에 아이들이 일궈 놓은 텃밭으로 물도 줄 겸 나들이에 나섰다. 텃밭 옆 산에는 예조판서 권협(權悏)과 그 손자인 선조의 부마 길성위 권대임(權大任:정선옹주) 등 안동권씨의 묘역이 있어 잠깐의 시간을 내어 묘지탐방을 하였다. 안동권씨 묘역에는 2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그중 길성위 권대임의 신도비를 찬찬히 살펴보니 우의정 미수 허목(許穆)이 글을 짓고, 승정원좌부승지 이징구(李徵龜)가 글씨를 쓰고, 사헌부대사헌 권규(權珪)가 전액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징구는 안동김씨 문온공파 음성문중의 사위인지라 눈이 번쩍 뜨이게 되었고, 공부를 해보니 이징구가 어찌하여 안동김씨 사위가 되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징구[李徵龜, 인조 19년(1641)~경종 3년(1723)],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휴(汝休), 증조는 금산군 충정공 이성윤(李誠胤), 조부는 사의 이정방(李庭芳), 아버지는 현감 이민정(李敏政), 어머니는 판관 한득일(韓得一)의 따님 청주한씨, 배위는 진사공 김계(金棨)의 아들 통덕랑 김영희[金永熙, 백부 정랑공 김구(金榘)에게 출계]의 따님 안동김씨이다.
한득일의 맏사위가 봉산군 이형신(李炯信)이고, 둘째 사위가 이민정으로 이형신과 이민정은 동서지간이 된다. 한편 김영희(金永熙)는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는데 맏이 통덕랑 김두서(金斗瑞)이고, 그 배위가 봉산군 이형신의 따님으로 아들이 승지공 김시경(金始慶)이며, 장녀가 이민정의 아들 형조판서 이징구(李徵龜)에게 출가하였다.
[형조판서 이징구(李徵龜)의 글씨]
이징구는 현종 4년(1663) 진사시에 합격하고, 숙종 2년(167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정언과 병조정랑이 되었다. 그는 당시 병조판서(후일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병조의 공무를 위임받아 처리하였다. 그는 모든 물량을 정제(定制)대로 출납하였으므로 그 이듬해에는 재용이 매우 풍부해졌다. 남구만의 계배가 사헌부 감찰 정수(鄭脩)의 따님 동래정씨이고, 정수(鄭脩)는 진사공 김계(金棨)의 사위로 남구만의 처 동래정씨와 이징구의 처 안동김씨는 서로 내외종간이 되는 셈이다.
이징구는 이러한 인연과 업무처리 능력으로 인해 3년 동안 자리를 바꾸지 않았으며 남구만의 천거로 1685년 병조참의에 승진하였다. 이후 장령·수찬·헌납·목사·필선·사간·집의·응교·보덕·부승지·좌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경종 1년(1721)에 지돈녕부사 등 노인직을 맡은 다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신임사화 때 소론에 의하여 직첩이 환수되었다가 영조 즉위 뒤 복직되었다. 서예에 능하였으며 미수 허목(許穆)이 지은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의 비문과 민창도(閔昌道)가 지은 허잠(許潛)의 비문 등을 썼다. 허잠은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許積)의 조부이고, 허적은 원주목사 증영의정 김제갑(金悌甲)의 외손자이다. 또 같은 묘역 맨 하단에 있는 묘가 권대임의 증손 군수 권세태(權世泰)의 묘인데 그 배위가 증정부인 안동김씨로 제학공파 승정원좌승지 김구만(金龜萬)의 셋째따님이었다.
아쉽게도 형조판서 이징구의 묘는 알 수가 없어 탐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 그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는 길성위 권대임(權大任)의 신도비와 지중추부사 허잠(許潛)의 신도비 사진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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