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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店.여관)과 온돌을 도입한 낙흥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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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20-04-16 20:58 조회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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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빌려왔습니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는 있으나, 점고과온돌을 생활에 도입한 분이 낙흥부원군 자점 공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문고사(古文故事)

점(店.여관)과 온돌의 폐해 - 성대중/청성잡기4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0.03.20|


옛날에 여행자는 원(院)에서 묵었다. 원에는 각각 주관하는 자가 있었지만 그저 땔감과 물이나 갖추고 있을 뿐이어서 양식이나 그릇, 솥 등을 모두 짊어지고 갔으므로 여행자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김자점(金自點.조선 인조때의 역신)이 처음으로 떠도는 거지들을 모아 점(店)을 설치하니, 여행자들이 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점의 이익이 너무 많아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상인들의 이문(이익)이 모두 점으로 들어가니, 점이 백성의 큰 폐해가 되고 있다.

온돌이 유행하게 된 것도 김자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방이 모두 마루여서 큰 병풍과 두꺼운 깔개로 한기와 습기를 막고 방 한두 칸만 온돌을 설치해서 노인이나 병자를 거처하게 하였다. 인조(仁祖) 때 도성의 사산(四山)에 솔잎이 너무 쌓여 여러 차례 산불이 나자, 상(上)이 이를 근심하였다. 김자점이 이에 오부(五部)의 집들에 명해 온돌을 설치하게 하자고 청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솔잎을 처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따뜻한 걸 좋아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명령을 따라 얼마 안 가서 온 나라가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온돌의 폐해가 심하니, 젊은 사람들이 따뜻한 데 거처하면 근육도 뼈대도 약해지며, 습지나 산이 모두 민머리가 되어 버려 장작과 숯이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는데도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가 보니 일본에는 온돌이 없어 노약자들도 모두 마루에서 거처하였다. 나도 겨울을 나고 돌아왔지만 일행 중에 아무도 병이 난 자가 없었으니 억지로 습관 들이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이를 전국에 시행하면 처음에는 비록 약간 문제가 있겠지만 결국은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이니, 백성들이 틀림없이 기꺼이 따를 것이다. 다만 점의 경우에는 대체할 방법이 없다.

대체로 역신(逆臣)이 만든 법들이 현재 많이 시행되고 있으니, 점과 온돌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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