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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충렬공 배향지) 소개(2001. 10. 18. 김영환(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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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10-26 14:56 조회1,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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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할아버님이 배향된 곳은 숭의전과 물계서원인데

물계서원을 아직 복원되지 못했으며

오직 숭의전에서만 제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숭의전 제례는 개성왕씨종친회에서 주관하며

배향공신 집안에서 참석하여 배향공신의 제례를

올립니다.

올해는 10월 19일에 봉행한다고 합니다.

참석하실 분을 19일 아침 7시 50분 용산역전에 오시면 대절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문의 2244-3717) 대종회에서는 명회사무국장

재광이사님, 종회 운영위원님등 다수 참석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을 바라며 숭의전에 대한 자료를 올립니다.


숭의전

숭의전은 조선 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현종)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었으나 세종때 조선의 종묘에는 5실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8왕을 제사함은 합당치 않다는 유사의 헌의에 의해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4왕만을 제사 지내게 되었으며 문종때 선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충신 16공신(정몽주, 복지겸, 홍유, 신승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을 제사 지내게 되었다.

6.25로 전소된 것을 1971년 12월 28일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사적 233호로 지정하고

72-73년 왕씨 후손과 국비, 지방비의 보조로 복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며

4왕16공신을 제사 지낸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이태조가 등극하자 고려 왕조의 종묘 사직을 없앨 생각으로

송도에 안치된 고려 왕의 위패를 배에 실어 송도 앞에 흐르는 예성강에 실어 띄워

보냈는데 임진강과 합류 지점에 도달한 후 임진강을 역류하여 강원도 철원과의

경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동이리 썩은소에서 하루를 정박한후에

3km 아래에 있는 앙암사 석벽에 머루르게 되었으며 그날 밤 앙암사는 폭우와

천둥벼락으로 순식간 폐허로 변해버렸다. 당시 마전군수는 이러한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그 이듬해인 태조 6년 앙암사가 있던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또한 앙암사가 파괴될 당시 경내의 범종이 임진강으로 굴러 물속에 잠겼는데

그 후 이 못에서 국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종소리가 울려 미리 예견했다하여

이못을 종못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

麻田郡

본래 고구려 마전천현(麻田淺縣)인데, 신라에서 임단(臨湍)으로 고쳐서

우봉군(牛峰郡)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고,

현종 9년에 장단에 붙여서 상서도성 소관으로 만들었다. 문종 17년에 직접

개성부에 예속시켰고, 그 뒤에 감무를 두었다가 곧 적성현(積城縣)에 합병했다.

공양왕이 다시 감무를 두었고, 본조 태종 13년에 옝; 따라 현감으로 고쳤다.

문종 2년에 그 땅에 숭의전(崇義殿)이 있기 때문에 군으로 승격시켰다.

사묘
崇義殿(숭의전):군 서쪽 5리에 있는데,본조 태조 원년에 예조(禮曹)에 명하여

마전현에 사당을 짓고, 고려 태조(太祖),혜종(惠宗),성종(成宗),현종(顯宗),

문종(文宗)원종(元宗).충렬왕(忠烈王) 및 공민왕(恭愍王)을 제사하게 하고

제전(祭田)을 주었다. 세종(世宗)7년이 되어 유사(有司)들이 말하기를,

"나라의 종묘(宗廟)에도 다만 오실(五室)을 제사하는데, 전조(前朝)의

사당은 팔위(八位)를 제사하니, 예에 맞지 않는다 하므로, 태조,현종,문종,원종만

남겨 놓고, 봄.가을 이중삭(二仲朔)으로 향축(香祝)을 보내어 제사했다.

문종(文宗)2년에 고려의 후손 왕순례(王循禮)를 찾아서 그 제사를 맡아 지내게 하고,

그 사당 이름을 숭의전이라 하여 왕순례를 부사(副使)로 삼았다. 복지겸(卜知謙),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黑+今-弼),배현경(裵玄慶),서희(徐熙),

姜邯贊(강감찬),윤관(尹瓘),김부식(金富軾),김취려(金就礪),조충(趙충),

김방경(金方慶),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정몽주(鄭夢周)등을 배향했다.


배향
복지겸(卜知謙):처음의 이름은 사현(沙現)이며 면천(沔川)사람이다.
벼슬은 태사(太師)이며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홍유(洪儒):처음의 이름은 술(術)이며 의성(義城)사람이다.
벼슬은 태사이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신숭겸(申崇謙):처음의 이름은 능산이(能山)이며 평산(平山)사람이다.
벼슬은 태사이며,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유금필(庾-黑+今-弼):평산사람으로 벼슬은 대광(大匡),시호는 충절(忠節)이다.

배현경(裵玄慶):처음의 이름은 백옥(白玉)인데, 경주 사람이다.
벼슬은 대광, 시호는 무열 (武烈)이다.

서희(徐熙):이천(利川)사람을로 호는 복천(福川)이다. 벼슬은 태보내사령 시장위 송겸교
병부상서(太師內史令諡章威宋檢校兵部尙書)이다.

강감찬(姜邯贊):처음의 이름은 은천(殷川)이며 금천(黑+今-川)_사람이다.
벼슬은 천수군 개국후(天水郡開國候)로 치사(致仕)하었으며,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윤관(尹瓘):자는 同玄(동현)이며 파평(坡平)사람이다. 벼슬은 태보시중(太保侍中)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김부식(金富軾):경주 사람이며 호는 뇌천(雷川)이다. 벼슬은 시중태자 집현전 대학사 낙랑군 개국후
(侍中太子集賢殿大學士樂浪郡開國侯)로 치사하였으며, 시호는 문렬(文烈)이다.

김취려(金就礪):언양(彦陽)사람이고, 벼슬은 태위시중(太尉侍中)이며,
시호는 위열(威烈)이다.

조충(趙沖):자는 담약(湛若)인데 횡성(橫城)사람이다. 벼슬은 태위평장사 증시중
(太尉平章 事贈侍中)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김방경(金方慶):자는 본연(本然)인데, 안동(安東)사람이다. 벼슬은 삼중대광 첨의중찬
상락공(三重大匡僉議中贊上洛公)에 치사하였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안우(安祐):탐진(耽津)사람이며 벼슬은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이다.

이방실(李芳實):함안(咸安)사람이며, 벼슬은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이다.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정몽주(鄭夢周):경도(京都) 문묘(文廟) 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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