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공(휘 순) 동년 - 조간(김제조씨보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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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7-08-10 09:03 조회835회 댓글5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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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재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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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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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자료 검색, 수고하셨어요
감사드리며
이러한 관계를 연구하시는 종친분들께 큰절 올려야 되지요
감사 다시한번드립니다
1279년(충렬왕5. 22세)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듬해 중시(重試)에서 조간(趙簡)의 방하(榜下)에 2등으로 들어 낭장(郎將)이 되었다.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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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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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조간의 외증손자가 정재박의중선생이시네요. 정재선생과 척약재선조와는 막역한 사이로 관련시문이 많이 전합니다. 척약재상소문도 정재선생이 보관하여 정재집에 실어 놓으셨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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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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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Re》김재영 님 ,
대부님, 과찬의 말씀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구보(舊譜) 중에 말씀하신 대로
문영공께서 1279년에 문과 급제하신 뒤
그 이듬해인 1280년 중시에서 아원으로 다시 급제하신 것으로 적혀 있는데요.
이 기록은 다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려사 세가와 선거지 기록을 비롯해 고려열조등과록 등 관련자료에 의하면
1279년 6월에 실시된 예부시(문과)는 33명을 선발하였는데,
이때 문영공께서 아원으로 급제하셨습니다.
당시 급제자는 33명 중 현재 7명만 밝혀졌습니다.
1280년에는 4월에 예부시(문과)가 실시된 데 이어
5월에 文臣을 대상으로 親試가 시행되었습니다.
4월에 실시된 예부시는 33명을 선발했는데, 현재 2명만 밝혀진 상태입니다.
5월에 실시된 친시에는 9명을 선발했는데, 현재 6명만 밝혀졌습니다.
이 친시에서 조간 선생이 다시 장원을 차지했으며,
충렬공 묘지명을 지은 이진 선생(익재 이제현의 아버지) 형제가 2등과 3등을 차지했습니다.
이 친시 급제자는 9명 중 6명만 알려져 있는 상태라
문영공께서 급제하셨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 親試는 1279년에 치러진 예부시의 重試가 아닌 충렬왕 親試이므로
重試라 할 수 없고 親試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즘 파종회 일 마무리지어야 할 게 있어서 관련 자료들을 다 올리지 못하고
대략 요점만 말씀드리고 훗날을 기약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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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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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
짧은 지식에 문영공자료를 검토 못하였습니다
문영공에 대한 자료도 정리가 되여야 하는데
걱정이 되네요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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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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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찾고 있으니 잘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건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노력하다 보면 큰 성과를 거두겠죠.